안녕하십니까?

 

이제 여러분을 2, 3학년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추워 체육관에서 개학식을 하지 않고, 교실에서 방송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얼굴은 못 보지만, 한 살 더 먹은 만큼 늠름하고 멋진 모습으로 등교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48일 간의 방학을 끝냈습니다.

방학을 시작할 때인 지난 1230, 또는 임진년 새해를 맞으며 마음 먹었던 바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개학을 맞아 세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 합니다.

잘 안 변하는 덕분에 인간관계도 예측 가능하고, 보다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이 재미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사람이 엄청난 노력 끝에 진일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든가,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춰 남부럽지 않던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추락을 보여준다든가 하는 말입니다.

 

개학을 맞아 우리 한가람에도 비상과 추락을 보여줄 인물들이 혹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잘 안 변하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때문입니다.

지난 방학을 시작하며, 공부, 또는 인간관계에서 큰 결심을 했던 여러분!

큰 결심과 뒤따르는 실망, 좌절을 거듭하며,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교훈 하나를 얻게 됩니다.

바로 일상의 작은 실천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매일 조금씩 공부 시간을 늘려나가는 실천, 늘 보는 친구지만, 먼저 인사하고, 말을 조심해서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요란한 결심보다는 훨씬 실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지난 겨울 방학 내내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눴을 부모님에 대한 것입니다.

학기 중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노력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이유로 미뤄졌던 부모님의 답답한 마음들을 방학을 맞아 여름철 퍼붓는 소나기처럼 느껴보았을 겁니다.

 

몇 년 전 중국 수학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를 잠시 드리겠습니다. 으레 들러는 쇼핑 센터에서 한 여학생이 적지 않은 돈으로 차를 사서는 제게 물어왔습니다. “선생님, 이 차, 좋은 거에요?”

 

한 눈에 봐도 신뢰가 가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왜 차를 샀는지 물어봤습니다. 부모님과 대화가 많지 않은데, 차를 타서 하루에 단 몇 분 만이라도 함께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는 어른스러운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이 차야말로 수백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차의 가치는 그 맛과 향에도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하는 원래의 목적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러분을 걱정스러워 하셔서 잔소리를 하시는 것이겠지만, 그 잔소리 속에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냥 우리 엄마 아빠는 원래 그래 하며 끝내지 말고, 조금씩 여러분의 마음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려보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보다 여러분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답답함, 두려움도 있는 그대로, 갖고 있는 욕심도 가감 없이 말씀드려보세요. 교감(交感)이 이루어진 곳에서 관계는 한 단계 높게 성숙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부모님의 다음 말씀은 "그래! 우리 고민해보자"일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배려에 대한 것입니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었습니다.

학생의 인권이란 주제에 대해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하고, 입시를 핑계 삼아 유보해왔던 학교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이나 모양이 아닌 머리 속을 보라는 교육감의 말씀은 매우 의미 있다고 봅니다.

 

학생의 생각과 생활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진로를 설정해주고, 공부 방법 및 전략을 세우도록 도와주는 일이 선생님에겐 더 멋지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들이 진작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그동안의 관행인데다가, 학부모님 눈치 보랴, 사회 여론 살피랴 용기를 못 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인권조례는 내가 누릴 권리 못지않게 친구와 선후배, 선생님, 부모님의 권리에 대한 자각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권 교육의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내 권리의 보장이 다른 사람의 권리의 침해로 이어진다면 양보와 타협, 조정과 조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의 장점 중 하나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익명성이 많이 제거되어 있으며, 선생님들의 생각 역시 나이만큼 젊다는 점입니다과거에도 그랬듯이 한가람은 여러분을 존중해드리겠습니다. 부디 여러분도 여러분의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을 존중해주십시오.

 

벌써 여러분에게 십 수 회는 반복된 새해, 2, 그리고 개학일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더 많은 선물을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쉬 낭비할 예사로운 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새 학년, 새 학기에도 멋진 꿈을 키워나가기 바랍니다.